[2018 여름 호]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은 최려나, 사회의 편견을 바꾸다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8-06-27 19:24     조회 : 125    
  트랙백 주소 : http://magazinelk.kr/bbs/tb.php/2017/66

▲ 사진 : 위드어스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최려나씨. 왼쪽에서 세 번째가 최려나씨이다.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은 최려나, 사회의 편견을 바꾸다



글|박진아 기자(매거진 리더십코리아)


사람은 누구나 삶의 특정한 측면에 대해 불편함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불편함과 타협하고 지금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 혁신가는 그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 그 사람은 사회 혁신가가 될 잠재성을 지니게 된다. 최려나씨는 그러한 면에서 사회 혁신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는 화상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최려나씨는 전신의 95%에 3도 화상을 입은 화상 경험자이다. 수십 번의 수술로 살아남은 그녀는 스스로 초등학교 과정부터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2014년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올해는 같은 학교 사회복지 대학원에 합격하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화상 경험자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은 그녀는, 이제는 사회에도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 기사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녀의 움직임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1. 그녀의 화상 경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도전할 용기도 필요하고 그것을 끈기 있게 이끌어나갈 인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려나씨의 인생은 그러한 용기와 인내를 가지기에 누구보다 어려웠던 삶이다.

A. 저는 전신 95%에 3도 화상을 입었어요. 제 살은 타들어 가 뼈까지 보였고 살아날 가능성이 5% 이하였죠. 제 몸은 감염이 되고 합병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어요. 의사 선생님은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고 저는 피부를 다 갉아 내고 인조 피부로 덮는 수술을 하게 되었답니다.

Q. 사고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초등학교 4학년 방학에 저는 사고를 만나게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 이사 온 다음 날, 짐 정리 전에 배가 고파 요리를 했는데 불을 켠 후 끄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어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냄새가 나더라고요. 엄마는 비염이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셨고 가스를 건드셨어요. 그 때 큰 폭발 사고가 났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저의 남은 머리카락을 잘라주었고 온몸에 소독약을 부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죠. 희한한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감각들이 되살아났고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열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갔고 저는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 이후로 40번이 넘는 전신마취를 했는데 아직도 그 순간들이 모두 생생히 기억나요.



2.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 계기들

누구보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에 변화를 가져오기로 결심한다. 그 변화가 있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고 이제 그녀의 변화된 모습은 세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Q. 혹시 이 경험들 속에서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경험이 있나요?

A. 저는 크게 두 가지에 대한 불만이 있었어요. 하나는 눈에 보이는 제 외모에 대한 불만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나는 그냥 나 자신인데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보더라고요. 한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왔어요.



Q. 그 불만의 감정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였나요?

A. 그런데 이러한 불만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사고 이후에 많은 치료비가 필요했는데 저의 소식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고 그들이 많은 후원금을 보내주었어요. 그리고 전 세계에서 편지들이 오기도 했어요. 제가 혼자라고 느꼈을 때 그러한 메시지와 응원이 제게 힘이 되어 주었어요. ‘세상은 아직 차갑지만은 않구나, 여전히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처음에 불만스럽고 마음이 아팠던 것들이 제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답니다.




3.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그녀의 삶

최려나 씨는 현재 사회복지 대학원생인 동시에 ‘위드어스’라는 모임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녀는 화상을 경험한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이 모임을 2016년에 만들었다. ‘함께 나아가자’는 모토를 가지고 수많은 화상 경험자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고 있다.



Q. 위드어스는 어떠한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A.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어요. 먼저 하나는 대학 입학 후에 가게 된 화상 캠프였어요. 저는 이곳에 멘토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화상을 경험한 초중고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세상에서 제가 제일 힘든 사람 같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들은 끝나는 날에 ‘힘이 되었어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어요. 나는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일을 통해 화상 경험자의 멘토로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두 번째 사건은 미국의 화상 경험자 학회인 ‘미국 피닉스 소사이어티’를 방문했던 일이었어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화상이 심한 정도로는 제가 1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만큼이나, 혹은 더 심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내 상처가 아무것도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이 두 사건을 겪으며 화상을 입은 친구들끼리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함께 간 친구와 이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이번 2018년 위드어스 캠페인의 주제가 ‘한걸음, 우리’라는 테마인데 어떠한 의미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A. 미국 피닉스 소사이어티의 한 프로그램 중 행진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소방관, 경찰관과 화상 경험자들이 함께 시청까지 걸어가는 행사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 행진 자체가 우리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외침 같았어요. 마치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에요.”라고 세상에 외치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이것을 한국에도 똑같이 실현하고 싶었어요. 화상 경험자들이 자신을 가리기보다는 세상에 먼저 나온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길 원했어요. “WITH US”라는 이름처럼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Q. 이 캠페인이 봉사자들과 참여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A. 작년 1회 행사에 왔던 화상 경험자가 20~30명 가량 되어요. 왔던 친구 중에 봉사자로 온 친구가 있었는데 막 화상을 경험한 친구이더라고요. 그 친구와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번 2회 행사에서는 그 친구가 멤버로 들어와 함께 캠페인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상처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화상 경험자들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 일하려 한다는 것이 너무 귀하고 매력적인 일 같아요.
그리고 화상 미경험자들도 많이 참여해주었어요. 자기 일이 아닌데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아직 사람들이 열려있고 차갑지만은 않다고 느꼈어요.



Q. 이렇게 캠페인을 준비하고 행동으로 생각을 옮기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힘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A. 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서 제일 버거웠던 것은 선례가 없었다는 것이에요. 한국에는 이러한 캠페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았어요. ‘아무도 안 갔다고 해서 내가 가지 말란 법은 없어. 그리고 내가 먼저 걸어가면 누군가도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선례가 없기 때문에 제가 단 1%라도 변화를 일으키면 그 변화는 큰 변화가 될 것이라고 믿음을 가졌어요. 부정적인 생각을 전환했던 것이 큰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4. 사회 혁신가, 최려나

Q. 본인을 사회 혁신가라고 생각하나요?

A. 사회혁신가는 조금 부담스럽고 사회변화가? 사회활동가?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호칭 자체가 부끄러운 것 같아요. 제가 큰 사회 변화를 일으켰다기보다는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했던 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인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그 행동을 생각으로 옮긴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큰 동기는 저 자신인 것 같아요. 결국 제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렇지만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중요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단체를 만들었던 동반자들과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모두요. 그리고 지나치게 큰 목표를 두기보다는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 집중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어요.



Q. 행동을 생각으로 옮기고 싶지만 (사회 혁신을 하고 싶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사회혁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에요. 세상을 바꾸어야 할 것 같고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혁신의 기준을 다르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꼭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혁신이 될 수 있어요. 제가 변화되기까지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어요. 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들 모두가 사회 혁신가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화상 미경험자들이 화상 경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는지 말씀해주세요.

A. 저희 화상 경험자들이 여러분과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캠페인의 모토가 ‘It doesn’t change who you are’이거든요. 화상을 입어도, 입지 않아도 너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우리의 상황을 100% 경험하지 않고선 저희에게 공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저희를 동정하지는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화상 경험자도 여러분과 같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개개인으로 바라봐주세요.






최려나씨는 끝으로 본인이 ‘사회인’이라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고를 경험한 이후, 마치 스스로가 사회에서 상관없는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과 사람들의 변화로 인해 이제는 그녀가 사회의 일부로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사회 혁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최려나씨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사회의 희망적인 모습,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 그리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는 움직임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 변화를 정말로 원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지만, 누구든지 진정으로 원하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간다면 이 사회에서 변화는 조금씩 일어날 것이다.








▼아래 다음글을 클릭하면 "축구로 아프리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FC 말라위 프로젝트" 기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