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가을 호] 기독교와 페미니즘, 그 사이에 있는 우리들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8-10-05 09:42     조회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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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페미니즘, 그 사이에 있는 우리들



글|박 진 아 기자(매거진 리더십코리아)


“크리스천이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교회 내 많은 청년도 여성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신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일컫는 크리스천 청년들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레디컬한 페미니즘의 행보를 보며 ‘과연 이것이 성경적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이 두 가지의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가?’이라는 의문이 든다.

많은 청년이 가지고 있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크리스천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백소영 교수님을 만났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학,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사회윤리를 전공했으며 공동체와 여성에 대한 관심으로 평생을 공부해온 여성 신학의 대가이다. 그녀는 “페미니즘도 은혜로울 수 있다.”고 말하며 청년들에게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백소영 교수님의 페미니즘, 그 시작]

Q.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어요. 교수님께서는 목사님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며 보수적인 성경적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계신 거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계기로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대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페미니즘을 의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들어왔다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87학번인데 당시에는 대학가에 이미 페미니즘이 퍼져있었거든요. 당시 저를 가르치시던 이대 기독교학과 교수님들이 가진 패러다임을 그대로 가지게 되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경 속 소수자들과 공동체에 속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이론적인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확립했고, 피부로 느낀 실질적인 경험은 결혼 이후에 하게 되었죠. (웃음)

[페미니즘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

Q. 최근 들어 한국에 페미니즘 운동이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있는데 한국의 페미니즘이 시작된 시기와 배경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국의 페미니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무엇일까요?
A. 한국의 페미니즘을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첫 번째 단계를 1기 페미니즘이라고 하는데 이때에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성향이 들어왔다고 볼 수 있어요. 시기적으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사상과 교육제도가 페미니즘의 발판이 되었죠. 여성에게도 이름을 부여하고 주체로서의 교육을 시작한 시기이고,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와도 밀접하게 맞닿아있어요.

1기가 개인의 주체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2기 페미니즘은 사회의 구조에 더 관심을 가져요. 이는 서양의 페미니즘과도 연관이 되어있죠. 유학파 학자들이 서적을 들고 오면서 한국에서는 1970~80년에 이미 다 퍼지게 되죠. 여성을 억압한다고 생각되는 시스템을 흔드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것이 가부장제이든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말이죠.

마지막으로 3기 페미니즘은 현시대의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나오게 된 것이 큰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 페미니즘만의 독특함이 드러납니다. 서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가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변화하면서 페미니즘도 발전해왔지만, 한국의 근대화가 급격히 일어난 만큼 페미니즘도 단기간에 다양한 양상을 보여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들이 무작위로 받아들여지는 “혼종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교수님의 해석]

Q. 최근의 한국 페미니즘을 “레디컬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A. 레디컬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생물학적 남성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레디컬’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면 ‘끝까지 밀고 나간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밀고 나간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레디컬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범주가 있기에 하나의 모양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Q. 최근의 한국의 페미니즘은 다양한 모습을 띠기 보다는 대부분 극단적인 레디컬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극단성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이러한 극단성은 주체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하나는 남녀 상관없이 2030세대들이 상황의 극단성에 대해 느끼는 분노 때문이에요. 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주범은 “신자유주의”이죠. 이 신자유주의로 인해 많은 젊은 세대들은 밀려있는 생존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페미니스트들이 타깃을 잘못 잡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한국의 페미니즘이 분노를 돌려야 할 대상에 물론 가부장제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오해 때문에 페미니즘이 점점 더 과격해진다고 볼 수 있답니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에요. 우리는 빠른 근대화를 거치면서 자아정체성을 충분히 주체적으로 만들어본 경험이 부족해요. 빠른 변화 속에서 자기 실험을 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고, 남들에게 묻어가는 것이 생존율이 가장 높은 방법이었죠. ‘튀면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많은 페미니스트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취하는 입장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Q. 최근 레디컬한 페미니즘의 운동으로 다소 과격한 시위와 행보들이 보입니다. 많은 크리스천이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먼저,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교수님의 해석은 무엇인가요?
A. 먼저 탈코르셋 운동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저는 이것이 참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또 하나의 코르셋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밈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지, ‘탈코르셋을 하기 위해 숏컷을 하고 노메이크업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기준이 생기면 안 되는 거죠. 그 행위가 나에게 억압이 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나에게 코르셋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개인의 몫인 거죠. 하나의 답만을 가지고서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는 전체주의적인 시각은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성체 훼손 사건은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A. 성체 사건에 대해서는 degradation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보통 종교 사상의 경우 그것이 제도화되고 문화 안에서 진행되는 동안 본래의 사상적 의미가 왜곡, 혹은 대중적 차원의 실천으로 격하되는 과정이 있거든요. 페미니즘이 종교 사상은 아니지만, 그 사상을 중심으로 모이는 형태의 집단성이 생기다 보니, ‘가부장제를 거부한다’는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는 방식이 ‘degrade’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톨릭의 가부장성을 해체하는 상징적 의미로 그런 파괴적 행위를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를 주장하는 방법’이 ‘너를 파괴하는 방식’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페미니즘]

Q.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교회 안이나 밖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신앙과 정체성을 가지기보다는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려 수동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자신의 주체적인 신앙과 페미니스트적인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A. 저는 페미니즘의 흐름이 “우머니스트”로 가는 페미니즘 되기를 바라요. 우머니스트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이에요. 개인적 권리만 주장해서는 자기 자녀들을 살려낼 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온 여성들이죠. 그들은 나도 잘 살지만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정체성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페미니스트 운동을 전개했답니다.

이를 위해서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라.”고 말하고 싶어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먼저 하나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라는 거에요. 성경 안에도 페미니즘과 함께 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충분히 존재해요. 이러한 부분들을 언급하면 친화성을 먼저 개방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성경을 더욱 잡으라는 거에요. 구약시대 때 사용했던 성경을 읽는 방식 중 “미드라쉬”라는 방법이 있어요. 이는 성경을 그대로 두고 살을 붙이며 읽는 방식이죠. 성경을 읽으며 여성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제외된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거에요. 예를 들면, 창세기에서 뱀과 여자의 대화는 있지만 뱀과 남자의 대화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생각해보는 거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성이 여성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며 성경을 더욱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Q. 교수님의 책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 중 “경줄과 위줄”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읽었어요. 이 방법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성경을 읽는 방법 중에 “경줄과 위줄”이라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소개해 드릴게요. 베를 짜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베에는 실을 세로로 고정하는 경줄이 있고 이 위에 가로로 새로운 베를 짜는 위줄이 있어요.
성경에서 경줄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초월성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성이라는 두 가지 성분을 포함한 말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문화적인 전제가 있는 부분을 위줄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20:17) 에서 경줄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겠죠. 그러나 그 소유에 해당하는 것들은 위줄이죠. 당시에는 “이웃의 아내, 남종, 여종, 그의 소, 나귀 등” 이겠지만 오늘날에는 “누군가의 저작권, 노트북, 아이패드, 스마트폰” 같은 것들 이겠죠? 오늘날 위줄은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랍니다.

Q. 이러한 방법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이렇게 읽다가 성경을 부정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들었어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위줄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는 어디에도 없을 거에요. 문화적인 맥락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에도 노예제를 찬성해야죠. 당시 바울의 시대에서는 이것이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요. 시대의 언어조차도 경줄로 판단한다면 하나님을 시대 편파적, 남성 편파적, 그리고 유대인 편파적인 신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요.

합리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머리와 가슴으로 이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경 속 위줄들을 오류라고 볼 수는 없어요. 이는 인간의 유한성이라고 보고 인정하는 게 신앙을 잘 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시의 문화 속에서 베 짜기를 할 수밖에 없기에 만들었던 줄이니까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문화 속에서 스스로 위줄을 짜야 하는 거죠.

많은 사람은 성경에 대해 경줄과 위줄을 구분하고 의심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죠. “어떻게 감히 내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경줄을 잡고 있으면 넘어갈 수가 없죠.

Q. 최근 들어 교회 안에서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남성이 많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기에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두 종류의 남자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먼저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이나 은유로는 여성인 남성들”이죠. 즉, 남성이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남자이기 때문에 이득을 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죠. 이 사회에서 권력을 지니지 못한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 안에서 “여성 되기”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남자입니다. 다시 말해, 매 순간에서 ‘여자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성들에게 어떤 것이 불편한지를 스스로 깨닫고 느끼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명절에 여성들이 시댁에서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방법이 있어요. 며느리들이 일어날 때 남자들도 같이 일어나고 같이 과일 깎고 설거지하고 해보는 거죠. 이런 “수행성”을 통해 연습하는 사람들은 남성이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Q.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저는 페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체제 밖의 시선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같고 그것이 곧 오리라는 비전이 있기에 현재의 삶을 계속 반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처럼 99명의 의미를 담은 공동체 일지라도 한 명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그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경 속 반영되지 않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기에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장장 세 시간의 인터뷰를 하며 그녀가 우리에게 내려준 해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는, “비둘기처럼 부드럽고 뱀처럼 지혜로워라.”이다. 교수님을 만나기 전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교수님은 매우 부드럽고 인간적이었다. 그녀가 페미니즘의 불모지인 이 한국 땅에서 여성 신학자로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해 무조건 배척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제시한 두 번째 해결책은 “성경을 끊임없이 붙잡아라.”이다. 교회 속 살아남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별에 대한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을 더욱 더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