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겨울 호] 북한이탈주민의 한국 정착 돌파구, 영어! 그리고 TNKR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7-12-27 18:36     조회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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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한국 정착 돌파구, 영어! 그리고 TNKR



정혜원 기자(매거진 리더십코리아)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는 사람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6년에는 3만 명을 돌파했다는 통일부의 발표도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경제적 어려움, 문화의 이질감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차가운 시선까지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영어가 또 하나의 장벽이다. 한국에서는 진학이나 취업을 하려면 영어가 거의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북한에서도 ‘영국’의 언어를 더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영어는 낯선 언어다. 정착을 위해 영어를 배워야만 하나,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영어 학원에 등록하는 것도 어려운 일. 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은 2013년부터 한국 사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양질의 영어 교육을 무료로 받고 있다. 바로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 (Teach North Korean Refugees, 이하 TNKR)에서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됐다는 이 단체.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광흥창역 앞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TNKR 을 찾아갔다.






· 나의 꿈이 아닌, 그들의 꿈.

TNKR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미국인 케이시 라티크(Casey Lartigue Jr.)씨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석사,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이은구씨가 공동 대표로 있다. 이들은 모두 인권, 교육, 북한 문제에 전문가다. 그런데, 공동 대표 두 명은 이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었으며, 비장한 꿈을 품고 TNKR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2012년 한국 방문 중이던 케이시 씨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북송 중단을 위한 단식 시위 현장을 보고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울 방법을 찾던 중 뜻이 맞았던 이은구 씨와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위해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개인적인 꿈’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미국인인 케이시 씨를 보면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했고, 케이시 씨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 ‘선택’이라는 낯선 경험, 변화의 시작.

북한이탈주민들은 엄격한 규칙 속에서 다소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TNKR에서 그들은 일련의 선택 과정을 거친다. TNKR에서 케이시 씨는 직접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영어 원어민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북한이탈주민들과의 1:1수업을 주선해주며, 학생들은 원하는 만큼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다. 수업 방식은 크게는 두 가지 과정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의 길 찾아가기’라는 주제의 기초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교육 과정이며, 두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전하기’라는 주제의 대중 연설을 위한 교육 과정이다. 단, 이 두 과정도 얼마든지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수업 방식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영어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고립된 사회에서는 만날 일이 거의 없었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며 열게 된 마음은 덤이다.


· 북한의 실상, 내가 직접, 영어로 알린다.

TNKR은 개개인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뿐더러 국제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One Young World Summit) 에서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한 박연미씨의 연설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TNKR의 개인과 세계를 향한 영향력을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박연미씨의 연설을 들으며 그가 어떻게 수준급의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고, 박연미씨가 영어를 배운 기관인 TNKR을 접하게 되었다. 박연미씨는 해당 연설을 통해 ‘국제 사회를 울렸다’는 평을 듣기도 했으며, 영국 BBC가 선정한 '올해의 세계 100대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TNKR에서는 매년 2회 영어말하기 대회를 실시하는데, 이 곳에서 우승을 차지한 학생들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김은선(제3회 우승자)씨의 저서 '자유를 향한 1천 마일'(A Thousand Miles to Freedom), 이성주(제1회 우승자)씨의 저서 ‘별똥별’(Every Falling Star)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TV 프로그램 진행이나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도 TNKR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을 넘어 국제 사회에서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기 위한 단체가 발맞추어 문을 열고 있다. 그 중에서도 TNKR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분명했다. 케이시 씨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였고,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였다.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지만, 그는 아직까지 통일 교육이나 다른 활동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이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본인에게’ 요청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시 씨는 단순한 영어 실력 향상 너머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한층 높아진 자신감, 숨기려고만 했던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마주하게 된 자유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유. TNKR은 영어 교육에 집중하지만 그 결과는 이처럼 다양하다. 단순히 ‘나’의 원대한 비전을 위한 활동이 아닌, 돕고자 하는 대상의 ‘필요’에 의한 것. 이것이 TNKR이 변화된 북한이탈주민들을 배출한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