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워싱턴에 남은 이유
 작성자 : 매거진팀
Date : 2017-03-17 00:14  |  Hit : 129  



그가 워싱턴에 남은 이유,

박주용 월드뱅크그룹 선임금융관의 이야기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월드뱅크(World Bank). ‘빈곤 없는 세상(A World free of poverty)’을 사명으로 하는 월드뱅크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저개발국의 개발과 발전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3대 국제경제기구로 꼽히며, 세계 경제에 있어 IMF와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월드뱅크는, 브레턴우즈 협정(1944)에 따라 각 국가의 2차대전 피해 복구와 개발을 위해 1946년에 설립되었다. 전쟁이 끝난 지금은 개발도상국 중 가맹국에 대한 개발자금 지원, 개발도상국이 직접 개발정책을 수립하고 진행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지원, 경제개발 담당자에 대한 연수 실시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월드뱅크는 한국인들에게는 2012년 한국계 미국인 김용(Jim Yong Kim)씨가 월드뱅크의 12대 총재로 선임되면서 보다 친숙한 곳이 되었고, 한국이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위상을 달리하게 되면서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높아지는 등 우리나라와의 관련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약 20년 동안 근무하며 월드뱅크의 금융전략, 금융정책, 금융계획을 담당하는 선임금융관이자 월드뱅크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을 만났다. 바로 박주용 월드뱅크 선임금융관이다. 그가 월드뱅크에 오게 된 사정과 그가 지내온 세월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저는 1954년생으로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바로 KDI에서 근무를 시작해서 4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때 제가 맡은 일은 한 경제의 재화나 서비스, 실업률, 가격수준 같은 경제 변수를 분석하는 총량분석이었는데, WEFA 자료를 많이 이용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WEFA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이후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WEFA에 10년 정도 있다가 지금의 월드뱅크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KDI에 입사했을 때에 한국의 은행들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고 금리도 다 정부에서 정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면서도 면접 때 ‘은행 금리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이 바로 그 일이네요. 이전에 있었던 WEFA에서는 금리를 예측(forecasting)했고, 지금 월드뱅크그룹에서는 금리 예측을 넘어 관리(managing)하는 일, 월드뱅크를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이사로서 매 회계연도 초에 월드뱅크 이사회에 신년전략을 보고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워싱턴에 남은 이유, 3W가 아닌 4W



박 선임금융관은 자신이 미국에 오게 된 이유를 3W로 표현했다. 그가 공부한 Wharton Business School, 이전에 근무했던 WEFA, 그리고 지금의 World Bank. 이 화려한 경력 중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는데, 그에게 이 모든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미국 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이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 미국에 남게 되었고, 말 못할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3W가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자신이 여기에 남게 된 이유를 다시금 발견했다. 그는 워싱턴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소위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워싱턴에 파견을 오기 때문이다. 박 선임금융관은 그들이 워싱턴에 있는 동안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그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세상을 아름답고 바르게 리드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미국에 온 이유를 3W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워싱턴에 남게 된 이유를 4W로 설명한다. 그는 네 번째 W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네 번째 W를 W.I.L.L.(Washingtonian Influence on Lordship and Leadership)이라고 제 나름대로 정의했습니다. 워싱턴에 남은 저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제가 여기서 만나는 분들에게 로드십, 즉 제가 가진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그분들이 자신의 로드십과 리더십으로 세상을 선하게 리드하게 하는 씨드(seed) 역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과 소통하려면 제가 먼저 갖춰져야 하니까 제가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이렇게 좋은 직장에도 다니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에게 있어 신앙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여 세상을 바르게 살고 또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된다. 그가 리더십 이전에 로드십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만나는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먼저 자기 인생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길 소망한다. 신앙의 토대 위에 자기 자신을 지켜 바르고 유능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로드십과 리더십을 갖게 하는 것, 그 4번째 W가 이제는 그의 소명이자 삶이 되어 있다.




리더십에 대한 그의 정의, Leadership 6 component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다. 리더십에 대해 그는 확고하게 정리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리더십을 6가지 요소(LEADERSHIP 6 COMPONENT)로 정의했다. 정체성(Identity)과 사명(Mission), 목적(Purpose), 전략(Strategy), 지침원리(Guiding principle), 핵심가치(Core value)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려가며 리더십의 6요소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누구나 자기만의 ‘정체성’이 있고 그걸 둘러싼 ‘사명’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발견하지 못한 채 그냥 앞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앞으로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비전이 아닙니다. 우선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한 다음에 그에 맞는 사명을 이루는 게 중요해요. 또 저는 Being이 ‘비전’이고 Doing을 ‘미션’이라고 이해해요.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비전 위에 내가 그걸 ‘어떻게 이루겠다’ 하는 미션이 세워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비전과 미션은 함께 ‘목적’을 이루죠. 목적을 분명히 한 뒤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략’이 나와야 하고, 전략을 세우고 따라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지침원리’가 필요해요.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을 저는 ‘핵심 가치’라고 해요. 저에게 있어서 진정한 핵심 가치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저는 사람들이 이러한 핵심 가치를 위해 내가 뭔가가 되겠다(Being)는 것을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정리하면 저에게 있어 리더십은 먼저 자기의 정체성과 나의 할 바를 명확하게 정의한 후 세상에서 나의 할 일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사회에 관여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겁니다.”

이처럼 명확하게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가 이에 대해 굉장히 오래 고민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한 비전과 미션이 있었고,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실력의 탁월함을 인정받으며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소명을 위한 경주를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박주용 선임금융관이 워싱턴에 남아 ‘Washingtonian Influence on Lordship and Leadership’을 발휘하며 살아갈 때, 그가 꿈꾸는 것처럼 그가 워싱턴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 선한 영향력이 한국사회에까지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의 미래와 월드뱅크의 역할



월드뱅크는 저개발국가의 개발과 발전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월드뱅크가 북한과 통일한국에 대해서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통일이 되면 그 비용을 한국 정부만 부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한일협정을 맺었던 이유는 경제개발을 하기 위한 자금, 즉 차관을 받기 위해서였죠.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왜 뒷일을 몰랐겠어요. 우선 급한 대로 돈을 조달한 거예요. 씨드머니(seed money)가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그 씨드머니는 한국에서가 아니라 차관을 통해서 나왔고, 1970년대부터는 월드뱅크도 많이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통일 펀딩을 하려면 월드뱅크를 비롯한 다국적 은행(international multilateral bank)의 도움이 없으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자리에 있기만 해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요. 현재 북한은 월드뱅크 회원국이 아니어서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어요. 미국이 월드뱅크의 최대주주인데 미국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북한은 회원국이 되지 못하거든요. 회원국이 못 되면 IMF나 다른 곳의 회원국도 될 수 없고 그러면 도움을 받을 수 없죠. 제가 보기에 월드뱅크가 통일한국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면 바로 그런 역할, 그리고 통일비용을 분담하는 역할에 대해서일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한반도가 통일이 되었을 경우 그에 맞는 정책의 틀을 짜기 위해서 미리부터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민간 주도의 통일 펀딩이 진행되고 있고, 이에 동참하는 손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말처럼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월드뱅크와 국제사회가 협력하고 그 짐을 함께 진다면 우리가 열망하는 통일로 가는 먼 길이 훨씬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김용 월드뱅크 총재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개방을 선택한다면 북한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작년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월드뱅크는 국제사회에서 제일 먼저 4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서 아프리카 국가들에 보내는 등 발 빠른 지원에 앞장서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하는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북한과 한반도통일에 관한 월드뱅크의 관심과 의지, 충분한 문제해결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선임금융관이 월드뱅크에 남아 있는 동안 월드뱅크와 월드뱅크 속 한국인 박주용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워싱턴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약력 사항>
연세대 상경대 경제학과 졸업
와튼 비즈니스 스쿨 졸업
前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前 WEFA(세계경제예측연구소) 연구원
現 월드뱅크그룹 선임금융관(Senior Financial Officer)




인터뷰/김희진, 황진솔
글, 사진/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