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가을 호] [GLS 2017 - 1] 제 2의 넬슨만델라, 브라이언스티븐슨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7-09-27 11:03     조회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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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브라이언 스티븐슨(Bryan Stevenson)(사진출처: Willowcreek Association)








제 2의 넬슨만델라, 브라이언스티븐슨



미국의 포춘지가 선정한 2016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뽑힌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미국의 인권변호사이다. 젊은 넬슨 만델라, 현실의 애티커스 핀치(미국의 인종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 하퍼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불공정한 형사 사법제도 내 깊이 자리 잡은 빈부 및 인종차별의 쓴 뿌리를 개혁하기 위해 투쟁해오고 있다.

최근 20년간 미국 내 범죄율은 급격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감인구는 100%가 넘게 증가했다. 범죄는 줄어들고 수감 인구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이 모순적 현상의 내막에는 ‘없는 자’에 대한 과도한 징벌과 민영화된 교도소의 이익증진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지속되는 로비 등의 검은 노력이 숨어 있다. 미국의 많은 주가 가석방제도를 폐지했고, 좀도둑질이나 사소한 재산 침해 행위에도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감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최대의 희생자는 ‘가난한 흑인’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의심을 받고, 실제 많은 흑인이 유죄판결을 받는다. 2000년대에 태어난 흑인 남성 세 명 중 한 명이 수감자라는 통계 결과가 이 믿기 힘든 상황을 증명한다. 2010년 기준으로 흑인 청소년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더 높고, 흑인의 수감률은 백인보다 6~7배 더 높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인 인종 편견이 낳은 현실이다.

스티븐슨은 하버드 로스쿨 재학 당시 인턴으로 일하며 사형수 교도소에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흑인 사형수를 통해 처음으로 사법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인종과 가난 때문에 과도한 징벌에도 변호 받을 권리가 박탈되는 것을 목격했고, 민영화 교도소가 재소자들에 대한 교육과 갱생의 공간이 아닌 이익 증진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는 졸업 후 부당하게 수감된 재소자들을 변호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Equal Justice Initiative(이하 EJI) 라는 비영리법률센터를 설립했다. 미국의 불공정한 형사 사법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힘쓰는 단체인 EJI는 빈곤층, 흑인, 여성 등 법률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무료로 변호를 제공하며 거대한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한 가운데서 ‘정의’를 외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노예제 사회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종적 편견은 현 미국 사회의 거대한 인종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 통하며, 빈곤층에게 필요한 법적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도,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채 특수계층의 ‘지대’와 맞물려 돌아가는 대규모 수감 시스템도 한 개인이 상대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바위이다.

그는 EJI를 운영하는 데 있어 연방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늘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에게 쏟아지는 냉소와 무관심,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냉정한 시스템과 그 앞에 무력한 자신을 보며 수없이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택했고, 마침내 그가 던진 계란이 바위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1989년 EJI가 창립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의 폐지를 끌어 냈고, 무고하게 혹은 과도한 형량으로 사형수가 된 100여 명을 구해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는 어떻게 그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그는 왜 이 일을 하는 것일까? 그는 ’왜’에 대한 물음에 ‘희망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답을 꺼냈다. 우리가 인식하는 문제 앞에 선택지는 두 가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망을 품거나, 두려움 혹은 무관심으로 문제를 내버려 두는 것이다. 대학시절 그는,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의 문제가 오랜 시간 지속된 인종 편견과 가난, 그리고 잘못된 구조적 역학이 만들어낸 ‘부당함(unjust)’에서 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부당함에 대해 사회는 충격적일 정도로 무관심했고,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는 두려움과 무관심 때문에 방치된 사회의 문제가 결국 이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무엇보다도 변화가 필요한 곳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부당함이 있는 곳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가고, 심리적으로 다가서는 것. 이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차별과 편견,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문제를 꼬집고 어쩌면 들리지도 않을 아주 작은 소리로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구조 앞에 끊임없이 느껴지는 무력감, 절망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내 입으로 꺼냄으로써 냉소적인 시선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불편한 것들을 할 때 비로소 영향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사례로 이미 이를 확인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 내 난무한 불평등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여부를 두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반대진영을 향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사진이 보도되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외면받는 장애인들의 현주소가 재조명되었지만 이것이 비단 장애인들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주변의 가까운 곳에는 여전히 대물림 되는 가난 속에 허덕이는 이웃이 존재하고, 돌봄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그에 대한 익숙함으로, 불평등이 방치되는 데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부당함과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문제 속에서 그 문제를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가까이 다가서서 희망을 말할 것인지를. 오랜 시간 제도라는 커다란 벽 앞에, 긴 역사의 시간만큼이나 뿌리 깊게 내린 차별 앞에 희망을 선택했던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이야기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결국 어떻게 바위에 금을 냈는지 우리는 확인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한, 우리 사회는 변화될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글 최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