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겨울 호] 불안한 삶 속 ‘안전지대’를 찾아서 - 영화 <디판> 리뷰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7-12-27 18:29     조회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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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삶 속 ‘안전지대’를 찾아서 - 영화 <디판> 리뷰






이다솜 기자(매거진 리더십코리아)




영화 <디판>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스리랑카 내전에서 반란군이었던 시바다산은 전쟁을 벗어나 제3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얼마 전에 죽은 ‘디판'이라는 사람의 신분을 산다. 디판의 가족은 얼마 전 사망했다. 그리고 디판의 가짜 가족이 등장한다. 디판의 아내가 된 얄리나, 딸이 된 일라이얄이다.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얄리나가 생면부지의 부모가 없는 일라이얄을 딸이라고 속여 디판의 가짜 가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디판 가족이 망명을 꾀하는 것으로 위장하고 프랑스로 향하게 된다.


프랑스에 와서 이들이 제일 처음 맞닥뜨린 관문은 난민 심사이다. 디판은 브로커가 알려준대로 자신은 NGO활동가이며 위험해져서 망명을 신청한다고 하지만 이미 심사하는 이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통역은 디판에게 정부군과 반란군 중 어느 쪽에서 싸웠냐고 물어보며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짧은 인터뷰 장면은 전쟁을 겨우 피해 안전한 나라로 왔으나 이들이 이전의 위험한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오히려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여파를 암시한다.


임시로 프랑스에서 거주할 수 있는 허가를 받게 된 세 사람은 ‘프헤'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게 된다. 디판은 이들이 살게된 아파트 단지의 잡역부로, 얄리니는 같은 단지의 노인의 수발을 드는 요양보조인으로서 직업을 구하고, 일라이얄 역시 프랑스 현지 학교에 다니게 된다. 영화는 이들이 낯선 땅에서 겪는 어려움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묘사한다. 성과 이름을 뒤바꾸어 우편물을 분류해 창피를 느끼기도 하고, 학교에서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친구들과 싸우기도 한다. 불어를 하지 못하는 디판과 얄리니는 그나마 언어를 빨리 배우는 일라이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이민자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누구도 그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들은 천천히 새로운 환경을 살아낼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에서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은 가짜 가족인 이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진통에 비하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진다. 얄리니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라이얄을 데리고 왔을 뿐이라며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려한다. 결국 이것이 일라이얄과의 갈등의 시작이 되고 처음부터 불안정했던 디판 가족의 위태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무리하게 엄마나 딸이 되어갈 것을 강요하고 노력하기 보다는 서로의 기댈 언덕이 되어간다. 학교에 데려다주는 얄리니에게 일라이얄은 다른 사람들이 하듯 자신에게 볼키스로 배웅을 해달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얄리니 역시 안정적인 체류를 하게 되어 런던의 친척으로 가게 될 때 일라이얄을 데리고 가겠다고 디판에게 약속한다. 일에 조금씩 적응을 하는 디판과 얄리니 사이에도 역시 조금씩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고, 세 사람은 비슷한 처지의 이주자들과 함께 주말에 예배도 드리고 소풍도 가며 삶의 즐거움을 찾아간다.


프헤에서의 안정된 삶은 스리랑카에서의 끔찍했던 폭력과 대비되기에 이들에게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언제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디판은 우연히 예전에 함께 싸우던 반란군 상관을 만나게 된다. 옛 상관은 고향의 동지들이 무기를 살 수 있도록 해외에 나와있는 디판과 같은 사람들이 모금을 해주어야 한다며 부담을 준다. 디판은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이미 자신의 전쟁은 끝났다며 선을 긋지만 마음의 빚과 고향에 두고온 사람들을 향한 감정이 되살아나 괴로워한다. 한편 동네의 갱들 사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인해 전쟁의 트라우마는 되살아나고, 얄리니는 그 충격을 견디다 못해 디판을 떠나 무작정 런던 친척집으로 떠나려 하다 그에게 제지당한다. 디판이 아무리 스리랑카에서의 전쟁과는 다른 성격이라고 말을 해도 얄리니에게 총소리 자체는 생존의 위협을 상기시키는 두려움일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동네 불량배들 사이의 알력 다툼인 사건은 프랑스에서의 안정된 삶과 점차 끈끈해지고 있는 세 사람의 관계를 통째로 위험에 빠뜨린다. 결국 누구에게도 안전한 집은 없는 것이다.


디판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가짜 가족이 그를 안전지대인 프랑스로 이끌었으며, 이제는 그들이 그의 타지생활의 버팀목이 되기에 그는 이들을 지켜야 한다. 디판은 창고에서 분가루를 가져와 축구장을 그리듯이 자신의 집이 있는 건물 앞마당에 선을 긋고 총기난사 금지구역을 만든다. 그의 행동은 단순히 총격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 속에서 스스로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한 의지의 선언이자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디판>이 2015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유럽에서의 난민 이슈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라는 점이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히 난민들의 삶의 어려움을 그려 냈을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불안함과 그 속의 안전지대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호소력이 있다. 디판과 얄리니가 일하게 되는 영역이 ‘돌봄자(caretaker)’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어려움을 피해 온 이들이 스스로의 삶의 안정을 찾는 방법으로 누군가가 꼭 필요로 하는 돌봄을 제공해주며 서로의 유일한 지지가 된다는 점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 사회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디판과 얄리니, 일라이얄이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 프랑스 선주민들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직장동료이거나 상사, 학교 선생님, 이민심사관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일을 할 뿐 세 사람의 인생에 선을 넘어서 개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얄리니가 일하는 노인의 아들인 갱 리더처럼 지나치게 개입하고 판단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동시에 세 사람이 프랑스에서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들이 삶의 기반을 찾을 수 있는 제도가 구비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든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되,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각자가 스스로의 방법으로 안전지대를 구축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실질적인 고민을 해 볼 지점을 제공해준다. 총기난사 금지구역의 경계선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리던 디판처럼, 어쩌면 서로의 안전지대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