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겨울 호] 함께 합시다, 다문화가정! 125년을 잇는 섬김 이야기
  글쓴이 : 매거진팀     날짜 : 17-12-27 18:49     조회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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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합시다, 다문화가정! 125년을 잇는 섬김 이야기

금융맨에서 다문화가정을 품은 펄벅재단 권택명 이사



박민성 기자 (방도마 기자)




2018년은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족 지원법'이 제정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결혼이주여성의 증가가 2000년대 사회 이슈화되어 지원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실행했고 실제 고용률, 가구소득, 부부관계 만족도,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등의 수치가 개선되었다. (2015 전국 다문화가족실태조사 참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외계층인 다문화가정은 정부 차원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표의 개선이 비단 정부만 노력한 결과일까? 다문화가정의 적응과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 펄벅 재단에도 그 역할이 있었다. 경기도 부천 소재의 이 재단은 소설 '대지'로 유명한 펄벅 여사의 박애 정신을 기려 1964년 설립됐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권택명 이사는 펄벅 재단 류진 이사장의 뜻에 공감해 2015년 재단 상임이사로 취임했다. 권택명 이사는 1969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줄곧 ‘금융맨’의 길을 걷다 2005년 외환은행나눔재단 초대 이사가 되며 본격적으로 사회공헌의 삶을 시작했다. 매거진 기자단 일동은 펄벅 탄생 125주년이기도 한 2017년 연말의 어느 날 강남역 카페에서 권택명 상임이사를 만났다.






· 금융맨에서 나눔재단으로, 그리고 펄벅재단으로



Q. 어떻게 은행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하다 나눔재단 초대 이사가 되었나?

A. 2005년 1월 외환은행 강남영업본부장으로 있었을 때다. 미국인 부행장이 면담 요청을 해왔다.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공익법인(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적임자를 찾기 위해 모니터링을 해보니 내가 제일 추천을 많이 받았단다. 내용을 잘 몰라 두려움이 있었다. 당시 국내엔 은행 공익 재단 설립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에 결국 받아들였다.



Q.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나?

A. 설립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방향 수립이나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맥킨지와 카네기 재단 등 미국 기업 재단을 방문해 벤치마킹했다. 은행과 직원들을 설득해 적극적인 협조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국내 은행권 최초로 ‘외환은행나눔재단’을 설립하고 국내외 복지 사업을 수행했다. 설립 이후 2013년 말까지 8년 간 상임이사로 사회공헌 사업을 해나갔다.



Q. 펄벅재단 상임이사는 어떻게 맡게 되었나?

A. 은퇴 후 그간의 경험을 살려 사회복지 비영리기관이나 단체를 돕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펄벅재단의 現 이사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으로부터 상임이사직을 요청받았다. 평소 기업인으로서 품은 류진 이사장의 사회공헌 철학에 공감했다. 매우 다망한 가운데서도 어려운 이웃을 살펴온 분이다. 나눔재단에서 지원사업을 하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결국, 2015년 말부터 펄벅재단을 섬기게 되었다.





· “진정성”, 역사 깊은 펄벅 재단을 이끄는 리더십



Q. 펄벅재단을 소개해달라.

A. 펄벅 재단은 미국 소설가 펄벅 여사의 사회복지사업에서 시작됐다. 1892년 중국 선교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오랜 기간 중국에 살며 <대지>등의 소설로 노벨문학상도 받은 미국의 저명 문인이자 사회사업가다. 그녀는 한국전쟁 이후 1965년 11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소외된 한·미 혼혈인을 위한 보육원을 설립했다. 이후 설립된 펄벅재단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퍼커시(Perkasie)에 있는 본부(Pearl S. Buck International)를 두고 있다. 한국,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중국 등 7개 나라에 지부가 있다. 펄벅재단의 설립 이념은 “출생(인종, 국적,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 만들기다. 한국펄벅재단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하게 증가한 결혼이민여성들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정 지원을 중점과제로 설정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가?

A. 펄벅재단의 사업 방향은 돕는다는 뜻인 H.E.L.P.로 설명할 수 있다. Health(보건·의료·건강), Education(교육·양육), Livelihood (생계·경제), Psycho-social(사회적 정서) 지원의 의미가 있다. 우리 재단의 사업으로는 저소득 다문화가정 장학사업, 방과후교실·역사교실 등 교육사업, 상담 및 캠프 등 가족화합 프로그램, 결혼이민여성들의 자조활동 지원사업, 자녀들의 외가 방문 사업 등이 있다. 이 다양한 사업을 기업과 개인의 후원을 받아 지속해서 수행해오고 있다.



Q. 펄벅 재단 사업이 참으로 다양하다. 재단을 운영하며 강조하는 원칙이 있는가?

A. 재단 직원과 스스로에게 항상 “진정성”과 “리더의 공부”를 강조하고 있다. “진정성”이란 수혜자가 진정으로 필요한 분야를 찾고 행동하는 것이다. 생색을 내거나 보여주기 위한 홍보용 사업이나 활동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수혜자들의 상황과 필요를 잘 인지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상호공존 또는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며 먼저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조직은 리더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리더 자신이 늘 자신의 용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리더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의 존속조차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의 특성상 시간 외 근무, 휴일 근무 등의 경우가 많아 공부까지 부담시키기 어렵다. 이상적인 방향이지만 현실적인 제약과 어떻게 조화를 시킬지 계속 모색하고 있다.




Q. 재단에서 일하며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A. 무엇보다 개인 후원 개발이다. 사회복지기관이나 단체의 지속가능한 운영은 기업과 개인의 성금과 후원으로 가능하다. 펄벅재단 역시 마찬가지다. 상임이사로서 후원개발은 매우 중요한 직무다. 기업 후원의 지원 금액이 크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과 연관되는 기부이고 지속 후원이 불확실하기도 하다. 결국, 개인 후원이 밑바탕을 이뤄야 한다.



Q. 개인 후원 개발을 위해 실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A. 지인들이나 또 새롭게 만나는 분에게 후원을 설득하고 있다. 늘 후원약정서를 갖고 다니면서 적절한 시기에 요청을 한다. 은행원일 때 가방에 카드신청서를 넣어 다니던 습관의 연장선이다. (웃음)
개인 후원 개발은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이다. 우리 한국인 마음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두레 정신과 같은 공동체 정신도 있다. 신뢰성만 확보하면 앞으로 개인 후원이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맞춤형 지원”과 “다문화 이해 교육”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 제언



Q. 2018년은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 10주년이다. 현재 다문화 가정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A. 다문화가정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들의 현실적 필요가 다기화되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신규 진입 결혼이민자는 줄고, 기존 다문화가정의 정주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혼 또는 사별 등으로 인한 한 부모 가정도 늘고 있다. 이밖에도 자녀 교육, 취업, 중도입국 자녀, 노후 대책 등 다양한 사회적 과제가 발생하고 있다.



Q.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A. 다문화 가정을 향한 “맞춤형 지원”으로 풀어야 한다. 이는 실제 다문화가정과 가까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현장 상황을 전달하고 정책 실행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 이해 교육”도 필요하다. “선주민”들의 다문화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가 매우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다문화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이다. 아동기부터 다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와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열린 다문화 사회는 우리 미래의 동력이 될 것이다.




· 시인 감수성으로 펄벅재단의 지속가능성을 꿈꾸다.



Q. 시집을 5권이나 낸 시인이라고 들었다. 이사님께 시는 어떤 의미였나?

A. 초등학생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74년 박목월 시인 월간지 '심상'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유명 시인은 아니지만 지금도 계속 시를 쓰고 있다. ‘하늘엔 별, 지상에는 꽃, 사람에게는 시’라는 말이 있다. 시는 고도의 정신적·정서적 산물이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고양시킨다. 19살부터 은행에서 근무했다. 은행은 “돈”, “생존”, “생활”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곳이다. 시인과 은행원은 정신과 육신의 대극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세계를 살아온 내게 시는 현실의 벽 또는 한계점을 극복하게 하는 마음의 샘, 혹은 수원지였다.



Q. 펄벅재단 상임이사로서, 그리고 권택명 개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A. 다시 말하지만, 펄벅재단은 금년 탄신 125주년이 되는 펄벅 여사의 위대한 박애 정신을 계승하는 국제 사회복지법인이다. 다문화가정, 직원, 지역사회가 만족할 수 있는 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국제 네트워크도 활용하는 모범적인 재단으로 지속 가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과제도 많고 개인적 한계도 있겠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개인으로서는 좀 더 시다운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또한, 신앙적인 면에서 더욱 성장해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더라도 후회가 덜 남는 여생을 꾸려가고 싶다.